'피하주사 제형' 특허 분쟁을 풀어보는 시리즈의 2편입니다. 1편에서 분쟁의 구도를 짚었다면, 이번 편은 PTAB이 왜 할로자임 특허를 무너뜨렸는지를 다룹니다. 미국 특허심판원(PTAB)이 할로자임의 PH20 특허 4건을 잇따라 '전부 무효'로 판단했습니다. 그 핵심에는 '실시가능성(enablement)'이라는, 출원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요건이 있습니다.
2026년 5월부터 6월 사이, 머크가 청구한 할로자임 특허 무효심판(PGR) 4건의 최종 판결(Final Written Decision)이 나왔습니다. 결과는 네 건 모두 동일했습니다. 도전받은 청구항 '전부'가 특허를 받을 수 없다(unpatentable)는 것이었습니다.
무효로 결론 난 4건
| 사건번호 (PGR) | 대상 미국특허 | 판결일 | 결론 |
|---|---|---|---|
| 2025-00003 | 11,952,600 | 2026.5.12 | 전 청구항 무효 |
| 2025-00006 | 12,152,262 | 2026.5.18 | 전 청구항 무효 |
| 2025-00004 | 12,018,298 | 2026.6.8 | 전 청구항 무효 |
| 2025-00009 | 12,123,035 | 2026.6.24 | 전 청구항 무효 |
네 건의 판결문은 판단 논리도 사실상 같습니다. 미국 특허법 제112조가 요구하는 두 가지 요건 — '실시가능 요건(enablement)'과 '기재 요건(written description)' — 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이번 사건의 핵심이자 우리가 준비해야 할 '실시가능성'에 집중합니다.
'실시가능성'이란 쉽게 말하면
실시가능 요건이란, '그 분야 통상의 기술자가 명세서만 보고도, 과도한 실험 없이(without undue experimentation) 청구범위 전체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요리에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맛있는 요리"라고 권리 범위를 넓게 적어 놓고, 정작 레시피는 김치볶음밥 몇 개만 적어 두었다면? 나머지 수많은 요리를 만들려면 요리사가 일일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그건 '레시피(명세서)가 요리 전체를 가르쳐 준 것'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특허도 마찬가지입니다.
PTAB이 무효로 본 이유
할로자임의 청구항은 '변형된 PH20 폴리펩타이드'를 매우 넓게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청구범위에 들어오는 변이체의 수는 무려 10의 49제곱에서 10의 66제곱 개에 이르는 '천문학적 집합(genus)'이었습니다. 문제는, 명세서가 이 방대한 범위를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판결이 지적한 핵심
· 천문학적 범위 — 청구범위에 드는 변이체가 10⁴⁹~10⁶⁶개 수준. 사실상 전부를 실제로 만들어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
· 반쪽짜리 실시례 — 명세서에는 '아미노산 1개만 치환한' 예시는 상당수 있었지만, 여러 곳을 동시에 바꾼 다중 변이에 대한 예시·지침은 거의 없었음.
· 예측 불가능성 — 양측 전문가가 모두 '아미노산을 5개 넘게 바꾸면 그 효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 동의.
· 결국 과도한 실험 — 어떤 변이체가 실제로 효소 활성을 갖는지 찾아내려면 하나하나 만들어 시험하는 시행착오가 필요 → 실시가능 요건 위반.
PTAB은 이런 요소들을 이른바 'Wands 요소(청구범위의 넓이, 기술의 예측가능성, 필요한 실험의 양, 지침·실시례의 유무 등)'에 따라 종합적으로 따진 뒤, '넓은 청구범위 전체를 실시하려면 과도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여기에 '출원인이 그 범위 전체를 실제로 발명해 보유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기재 요건 위반까지 더해져, 청구항이 통째로 무너진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번 무효의 본질은 "아이디어는 넓게 주장했지만, 그 넓이를 뒷받침할 데이터와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판결이 출원을 준비하는 기업과 발명가에게 남긴 구체적인 숙제를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