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8일, 미국 메탈밴드 디먼헌터(Demon Hunter)가 넷플릭스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냈습니다. 그런데 소장에는 뜻밖의 고백이 있습니다. 2014년 등록해 둔 자기 이름 상표가 이미 취소돼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한국이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달랐을지 짚어 봅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세계적으로 흥행하자, 이름이 겹치는 미국 밴드가 소송을 냈습니다. 2000년 시애틀에서 결성돼 정규 앨범 12장을 낸 기독교 메탈밴드 ‘디먼헌터’입니다. 밴드의 법인 Hyde Lane, Inc.는 넷플릭스·넷플릭스 스튜디오·AEG 프레젠츠를 캘리포니아 중부연방지방법원에 제소했습니다.
숫자로 보는 사건
- 청구원인 — 상표권 침해(15 U.S.C. §1114), 출처의 허위표시(§1125(a)), 불공정경쟁
- 넷플릭스는 2025년 8월 이후 ‘KPOP DEMON HUNTERS’ 상표 10건을 미국 특허상표청(USPTO)에 출원 — 제3·9·20·21·24·28·41류, 최초 사용 주장일 2025. 6. 10.
- 밴드가 든 혼동 사례 — 2026년 2월 뉴욕주 공연 티켓을 500달러에 산 관객이 “케데헌 콘서트인 줄 알았다”며 환불 요청
- 넷플릭스는 “근거 없는 주장(These allegations are without merit)”이라며 맞대응 방침
소장에 적힌 한 문장 — “서류를 제때 내지 못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밴드가 가진 상표의 상태입니다. 밴드는 2014년 8월 12일 제41류(음악 밴드의 라이브 공연)에 ‘DEMON HUNTER’를 등록(제4,584,097호)했고, 최초 사용일은 2001년 3월 1일로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소장은 이렇게 적습니다.
소장 원문(제41류 등록에 관하여)
“Registration Number 4584097 was cancelled on February 28, 2025 due to an inadvertent failure to timely file the requisite Section 8 and 9 Declaration.”
— 제8조·제9조 선언서를 기한 내에 내지 못해 2025년 2월 28일 등록이 취소되었다는 뜻입니다.
정작 케데헌이 공개된 것은 2025년 6월입니다. 넷플릭스가 제41류에 출원할 무렵 밴드의 제41류 등록은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밴드는 2025년 12월 13일 같은 류에 다시 출원했고(99528509, 심사 중), 음반·인쇄물·의류 등 2022년 등록분은 살아 있습니다.
잠깐, 용어 정리
- 사용주의(미국) — 상표권이 ‘실제로 쓴 사실’에서 나온다고 보는 태도. / 등록주의(한국·일본·중국·유럽) — ‘등록’에서 나온다고 보는 태도.
- Section 8 선언서·§8·9 갱신 — 미국은 등록 후 5~6년차, 9~10년차, 그 뒤 10년마다 사용 견본(specimen)과 함께 사용선언서를 내야 하고, 6개월 유예기간이 끝나도 내지 않으면 등록이 취소됩니다.
“25년 동안 실제로 공연해 온 밴드가, 바로 그 ‘공연’ 상표를 잃었습니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상표를, 같은 방식으로 방치했다고 가정해 봅니다. 한국이었다면 이 취소는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상표법은 존속기간을 설정등록일부터 10년으로 정하고(제83조), 갱신은 존속기간 만료 전 1년 이내(또는 만료 후 6개월 이내)에 갱신등록신청서를 내고 등록료를 납부하면 끝납니다(제84조). 2010년 개정으로 실체심사도 없어졌고, 무엇보다 사용 증거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안 써도 되는’ 나라는 아닙니다. 대신 불사용취소심판이 있습니다. 상표권자·사용권자 중 누구도 정당한 이유 없이 3년 이상 국내에서 등록상표를 쓰지 않으면 누구든지 취소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제119조 제1항 제3호). 결정적 차이는 누군가 문제 삼아야 절차가 시작된다는 점, 그리고 청구되더라도 상표권자가 사용 사실을 입증하면 등록이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25년간 공연해 온 밴드라면 방어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 구분 | 미국 (USPTO) | 한국 (특허청) |
|---|---|---|
| 권리의 출발점 | 상거래상 사용 — 등록 없이도 보통법상 권리 발생 | 설정등록 — 등록으로 권리 발생 |
| 출원 요건 | 사용(§1(a)) 또는 사용의사(§1(b)) — 의사출원은 등록 전 사용진술서·견본 필요 | 사용하거나 사용하려는 의사만 있으면 가능(제3조) — 사용 증거 불요 |
| 등록 유지 | 5~6년차 §8, 9~10년차 §8·§9 — 매번 사용 견본 제출 | 갱신등록신청서 + 등록료 — 사용 증거 불요 |
| 쓰지 않으면 | 선언서 미제출·사후감사(audit) 불응 시 등록 취소 | 제3자가 불사용취소심판을 청구해야 취소 심리 |
| 미등록 상표 | §1125(a) 출처 허위표시로 연방법원 제소 가능 | 상표법상 청구 불가 — 부정경쟁방지법(국내에 널리 인식된 표지)에 의존 |
마지막 줄이 이번 사건의 반전을 설명합니다. 밴드는 제41류 등록을 잃고도 소송을 낼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등록이 없어도 실제 사용으로 쌓인 권리로 다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었다면 등록을 잃은 순간 상표법상 카드는 사라지고, 부정경쟁방지법상 ‘국내에 널리 인식된 표지’임을 따로 입증해야 하는 훨씬 무거운 싸움이 됐을 것입니다. 소장 원문 보기 ↗
그래서 무엇을 배우나
첫째, 해외 상표는 ‘등록’보다 ‘유지’에서 갈립니다. 사용 증명을 요구하는 나라에서 국내 감각으로 기한을 관리하다가는 권리를 통째로 잃습니다. 둘째, 사용 견본을 평소에 모아 두어야 합니다. 급히 만든 자료는 사후감사(audit)에서 걸리기 쉽습니다. 셋째, 류(class)별로 권리를 점검해야 합니다. 이번 밴드도 음반·의류 등록은 살아 있었지만 정작 분쟁의 핵심인 ‘공연’ 류만 비어 있었습니다.
반대로 한국에 들어오는 해외 브랜드라면 유명세만 믿고 출원을 미뤄서는 안 됩니다. 제3자의 선점 출원은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3호(부정한 목적의 모방출원)로 다툴 수 있지만, ‘부정한 목적’ 입증이 늘 쉽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