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한미사이언스 계열사 제이브이엠(JVM)이 국내 자동조제 장비업체를 상대로 낸 의약품 자동포장장치 특허 침해·손해배상 소송에서 JVM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2020년에 시작해 6년이 걸린 분쟁입니다. 그런데 공개된 등록특허 목록을 열어 보면, JVM이 지킨 것은 특허 한 건이 아니었습니다.
6년 공방, 무엇이 지켜졌나
보도에 따르면 상대 업체는 침해 주장에 맞서 특허 무효심판으로 반격했습니다. 침해 소송에서 가장 흔한 방어가 “그 특허는 애초에 무효”라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당 특허의 유효성은 특허법원과 대법원의 판단을 거쳐 최종 확정됐고, 그 뒤에야 침해와 손해배상에 대한 1심 판단이 나왔습니다.
여기까지가 기사가 전하는 사실입니다. 침해 주장의 대상이 된 특허가 몇 건인지, 어떤 특허인지는 보도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무효심판이 대법원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권리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저희가 주목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JVM이 기댈 수 있었던 권리는 과연 그것뿐이었을까요.
한 대의 장비, 212건의 등록특허
공개 데이터베이스에서 (주)제이브이엠이 출원인으로 등재된 국내 등록특허(B1)를 뽑아 보면 212건이 나옵니다. 1998년부터 2025년까지, 27년에 걸쳐 쌓인 권리입니다.
존속기간이 만료된 49건을 빼고도 163건이 남습니다. 게다가 이 권리들은 서로 다른 제품에 흩어져 있지 않습니다. IPC 분류를 보면 A61J(의료용 투약·조제 기구) 92건, B65B(포장) 72건으로, 사실상 ‘자동조제·포장 장비’라는 한 덩어리에 집중돼 있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한 건뿐이라면, 무너뜨릴 것도 한 건뿐입니다.”
망은 이렇게 짜입니다 — 기능 단위로 쪼개서
한 대의 장비를 특허 한 건으로 덮으려 하면 청구항이 넓어지고, 넓어진 만큼 선행기술에 걸려 무효가 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장비를 기능 단위로 쪼개 각각을 별도 출원하면, 청구항 하나하나는 좁고 단단해지고 전체로는 촘촘한 그물이 됩니다. JVM의 목록이 정확히 그 모양입니다.
망이 만드는 세 가지 힘
왜 ‘한 건’이 아니라 ‘망’이어야 하는가
- 무효 리스크가 분산됩니다. 한 건이 무효가 돼도 나머지가 남습니다. 특허 한 건에 사업을 얹으면 그 한 건의 운명이 사업의 운명이 됩니다.
- 회피설계가 막힙니다. 상대가 A를 피해 우회하면 B에 걸리고, B를 피하면 C에 걸립니다. 기능 단위로 촘촘할수록 빠져나갈 틈이 줄어듭니다.
- 협상력이 생깁니다. 침해 주장의 근거가 여럿이면 상대는 무효심판을 여러 건 걸어야 하고, 그 비용과 시간 자체가 억지력이 됩니다.
망은 소송이 시작된 뒤에는 못 만듭니다
이번 사건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분쟁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권리가 쌓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2020년에 소를 제기하려면 그 전에 출원·등록이 끝나 있어야 하고, 무효심판을 버티려면 명세서가 애초에 단단하게 쓰여 있어야 합니다. 망은 분쟁이 터진 뒤에 급히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실무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 제품의 어느 기능이 아직 비어 있는가. 경쟁사가 우회할 수 있는 경로는 어디인가. 지금 가진 특허 중 실제로 침해 주장을 걸 수 있는 건은 몇 건인가. 이 점검은 제품을 팔기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주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 글에 관하여
이 글은 언론 보도와 공개된 등록특허 서지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일반 정보이며, 특정 사건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판결의 구체적 내용과 대상 특허, 각 특허의 현재 권리 상태(연차료 납부에 따른 소멸 여부 등)는 별도의 확인이 필요합니다.